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독후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개인의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경제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유명한 경제 관련 유튜브를 보고 책들을 봐도 뭔가 지식이 파편처럼 흩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다음으로 읽을 책을 찾아 헤맸고 유튜브에서 경제 도서 추천을 검색하여 발견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홍춘옥 작가가 쓴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먼저 공유하고 책에서 새로 배우게 된 개념들을 아래에 정리하여 기억하고자 한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책 좋았던 점

  • 역사 공부를 제일 싫어했던 나도 재밌게 역사와 경제를 함께 알 수 있었음
  • 자본 시장의 등장과 그 흐름을 전반적으로 쉽고 흥미롭게 설명했는데, 돌이켜보니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간 게 흥미 유발 지점이었던 것 같음.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책 아쉬웠던 점

  •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난 다른 이야기가 서술될 때가 있었음(작가분께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다 알려주고 싶으셨나? 혹은 분량을 생각하시느라 이얘기 저얘기 다 가져온 건가? 싶었음)

 

새로 배운 내용 요약

1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 이야기

1장.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 19세기

✅ 1장 한줄요약: 명예혁명으로 낮은 국채금리 + 네덜란드의 금융 제도 기반의 신뢰할 수 있는 자본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금을 쉽게 조달하여 군력이 상승했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넬슨 제독)이 프랑스(나폴레옹)를 재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함대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이 배는 생산·유지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했는데,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을 기점으로 국채금리가 급격히 하락한 덕이 크다(기존에는 10%를 넘던 금리가 명예혁명 이후 4~7% 수준).

: 과거의 높은 금리는 튼튼하지 않은 국가 재정으로 영국 왕실(스튜어트 왕가)이 빈번하게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기 때문

: 또한 이런 상황으로 인해 세금 부과 항목이 많아졌고, 이에 반발심을 가진 시민들이 1688년 명예혁명을 일으킴

 

이 후, 영국 정부는 단 한 차례도 이자와 원금 지급을 연체하지 않았다. 또한 윌리엄 3세가 새로 오며 네덜란드 사람 + 사고방식 + 금융제도를 도입하였다.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며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영국 해군과 육군의 전력 상승(실전에 가까운 훈련 포함)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하여, 영국 국민은 채권 투자를 통해 편안한 노후 설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형성되자 전 세계 부자들이 투자하러 영국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네덜란드 금융제도가 뭐길래? 이렇게 대혁신을?

 

 

2장.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출범한 이유는? - 17세기

2장 한줄요약: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상이 자유로웠던 네덜란드에서 독립전쟁 시기에 국가를 대신하여 해외 시장을 개척할 민간 자본 육성이 필요했고, 동인도회사가 나오며 동인도회사의 초대주주가 1천명이 넘었다. 이 때, 최초의 주식시장도 생기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

사업을 시작할 때 인생을 거는 수준의 결의가 필요했던 무한책임 원칙이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대항해시대가 열린 후, 유한책임을 기본으로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주식회사라는 제도의 필요성이 거론되었다(1-2년 단위가 아닌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친 사업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

 

대항해시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열어젖혔는데 왜 갑자기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중세 유럽 사회의 핵심인 장원제도(영주가 농노를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었던 덕분

: 네덜란드는 바다나 늪지를 개간했기 때문에 교회도 귀족도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은 직접 개척한 땅을 자유롭게 사고 팔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통과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16세기 말부터 이어진 기나긴 독립전쟁도 혁신을 유발한 원인

: 당시 스페인의 통치로 인하여 정부 차원에서 해외 진출을 도모할 여력이 없었고 오랫동안 해외 시장을 개척할 민간 자본을 육성해야 했는데, 동인도회사가 기막힌 대안이었다. 동인도회사의 초대 주주로 등록한 사람이 1천 명이 넘을 정도여서 거대한 자본금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동인도회사는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고,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이 세워질 정도로 많은 투자자가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사고 팔게 되었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튤립 파동(튤립 버블): 네덜란드에 주식시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재테크 붐이 일었고, 동인도회사가 성공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바람에 해외에서 돈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돈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여 그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튤립으로 인하여 금융 투기가 발생했다.

 

 

 

3장. 군대는 강하지만 경제는 허약했던 스페인 - 16세기

 

3장 한줄요약: 스페인은 군대는 강했지만 중앙은행이 없어 경제가 허약했다. 또한 지속적인 전쟁으로 용병 급여를 지급할 수 없었고, 덕분에 네덜란드가 남부 협력 및 혁신적인 전술과 함께 독립할 수 있었다.

 

더보기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금과 은을 약탈하여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나, 그에 비해 생산 능력이 떨어져서 오히려 네덜란드에 귀금속을 넘기고 필수픔을 구매하여 식민지를 운영하였다(ex. 네덜란드 병). 당시 스페인은 중앙은행이 없어 금리 인상 같은 처방도 할 수 없기도 했고, 지속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사태가 계속 악화되었다.

 

당시 스페인의 군사력은 강하긴 했지만 전쟁에서는 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당시는 기사단이 아닌 용병 제도로 변하며 급여가 지급되지 않으면 주변을 약탈해 비용을 회수하기도 했다. (ex. 네덜란드 독립전쟁 '앤트워프 약탈 사건')

 

스페인 왕실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며 1575년 파산, 용병 급료 미지불하였고, 용병들은 네덜란드 앤프워프 약탈 및 살해를 저질렀다. 이로 인하여 네덜란드 국민들이 스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스페인을 축출하기 위하여 네덜란드 북부와 남부가 종교 차이를 불문하고 협력하는 '헨트 협약'을 체결하였다. 

 

네덜란드의 혁신적인 전술도 독립을 이끄는 결정적 계기였으나, 스페인의 좋지 않은 재정도 한 몫 했던 것이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 네덜란드 병이란?
    1959년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전 발견 후, 수출 대금(외화)이 대거 유입되자 네덜란드 화폐로의 환전이 많아졌고 그 결과 네덜란드 화폐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이로 인하여 1970년대 들어 천연가스를 제외한 수출업체들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게 됨

 

 

4장. 16세기 물가 혁명,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 16세기

금은 가공용이성, 보존성, 사용 가치(왕가)로 인하여 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기도 했지만, 금이 화폐로 인정받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금을 보증해 주는 '증서'가 생기고 '화폐(주화 주조)'로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금의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여 물가가 내려가게 되기도 하였지만, 1492년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 이후 신대륙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이 유입되어 물가 혁명을 일으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 인구가 늘어나면 1인당 소득이 줄어들고, 반대로 인구가 줄면 1인당 소득이 늘어난다(저성장 경제)

 

 

5장. 메디치 가문부터 암스테르담 은행까지 - 14세기

귀금속의 거래와 함께 유럽에는 '자본주의적' 거대상인이 등장하였다. 그 상업 금융 엘리트 가문 중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환어음 중개 업무를 중시했다. 하지만 환어음 거래로 인하여 외상 거래가 많았고 그 안정성이 부족했다. 이에 암스테르담 시에서 상인들의 실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을 세웠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현대적 의미의 은행(대출을 운영하는 은행)은 아니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은행 시스템(지급준비금이 거의 100%)을 만든 시작이었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 환어음이란? 중세의 치안 불안 및 부실한 도로망이 빚어낸 상품으로, 발행지가 아닌 제2의 장소에서 이를 소지한 사람(수취인)에게 여기에 적힌 액수만큼 현금으로 지불하게 하는 일종의 명령서.

 

 

6장. 메디리 포핀스와 뱅크런 이야기

17세기까지도 은행에 대한 신뢰가 낮았는데,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이 1659년 스웨덴 정부에 의해 설립된 릭스방크였다(대출 비슷한 기능까지 실행). 이런 개혁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의해 꽃피우게 된다(1694년 설립). 영란은행은 영국 정부에 대한 대출을 대가로 화폐 발행권을 부여받기 시작했고 점점 더 정부와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며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이 되었다. (당시 영란은행의 국내총생산 대비 자산 비중은 20% 선을 넘었다.)

 

 

7장. 스코틀랜드의 사기꾼 존 로와 프랑스의 몰락

많은 인구와 넓은 국토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세계사의 중심에 서지 못한 '영원한 도전자' 프랑스. 그 이유는 바로 돈이 없고 신용도가 바닥 수준이어서 그렇다(프랑스 왕실의 채무, 이는 전쟁으로 인한 게 큼)

 

이 때,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기꾼 존 로가 등장하여 왕립 은행을 설립하고 정부가 화폐 발행을 독점하라고 조언. 하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민간에 통용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미래가 창창한 '미시시피 회사'를 대안(주식이자 중앙은행)으로 마련. 하지만 이 또한 프랑스 왕실 인사들의 차익 실현 배신으로 인하여 주가 폭락 및 중앙은행을 만들려는 시도 무산. 국민들은 큰 손실을 잃고 국가가 주도하는 은행과 지폐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게 되었다.

 

금리가 높은 나라는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위의 내용들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신뢰'를 얻어야 국민드로부터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금을 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 리스크 프리미엄 가 존재한다. 즉, 금리가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이렇게 정리하다간 한 주 넘게 걸릴 듯.. 2부부터는 요약된 내용만 정리 기록

 

 

2부 대항해시대로 열린 '글로벌 경제'

1장. 명나라 때 왜구가 창궐한 까닭은?
2장. 아메리카 대륙의 은, 중극으로 유입되다
3장. 삼국지 이후의 시대에 왜 아무도 관심이 없을까?
4장. 명나라 때까지는 서양보다 잘살았다!
5장. 조세개혁으로 부강해졌는데, 명나라는 왜 망했을까?
6장. 청나라 때 인구 4억을 돌파한 이유는?

 

화폐 공급이 줄 때 경기가 나빠진다!

16세기 스페인, 중국 사례를 기반으로 화폐 공급이 줄어들 때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대공황도 마찬가지). 화폐 공급이 줄어들면 국민들의 화폐 인출로 인하여 은행 예금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럴 때 심각한 불황에 빠지게 된다(리먼브러더스도 마찬가지).

 

3부 맬서스와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1장. 왜 청나라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2장. 산업혁명 vs. 근면혁명
3장. 영국은 어떻게 '인구 폭발'을 피할 수 있었나?
4장. 마약왕 영국!
5장. 미국 남부는 왜 그렇게 노예제도 폐지에 강력하게 저항했을까?

 

생산성 증가가 빠른 혁신 국가에 투자하라!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의 황금기 이야기를 보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는 나라인 생산성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 즉, GDP 추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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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궁금해서 찾아본 최근 대한민국 GDP 추이

생산성을 꾸준하게 향상시키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미국, 독일, 대한민국, 중국, 스웨덴, 이스라엘, 아일랜드 등···). 이런 소수의 혁신 국가를 제외한 나라 중 생산성이 꾸준하게 향상된 나라는 이웃을 잘 둔 덕분인 경우이다(부유한 이웃들이 여행을 와서, 저렴한 인건비로 부유한 나라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산업을 유치해서, 고위험·고수익을 노린 자금이 유입돼서).

 

4부 대공황, 아 대공황!

1장. 제1차 세계대전은 왜 뜻밖의 사건이었나?
2장. 독일에서 하이퍼 인플레가 발생한 이유는?
3장. 1929년 미 증시 대폭락의 원인은? 레버리지 투자!
4장.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나?
5장. 대공황은 왜 그렇게 길게 이어졌나?
6장. 은행의 위기가 대공황으로 이어지다!
7장. 디플레이션이 왜 무서운가?
8장. 독일은 어떻게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불황이 시작될 때에는 단호하게 행동하라!

대공황 시기를 보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불황이 닥쳤을 때는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 80년 만에 '뱅크런'이 발생했지만 미 연준은 즉각 대응하였다.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시장에서 채권을 직접 매입하여 금리를 낮추고(시장에 현금이 많아지니까) 통화를 공급하는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에 옮겼다. (이 뿐 아니라, 2009년 3월 G20 정상회담 이후 세계 주요국 정부가 동시에 재정지출을 늘리기로 합의한 것도 영향)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국채나 기타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통화 정책. 금리 인하만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음. (자산 매입 → 유동성 공급 → 경기 부양 효과)
  • 통화 긴축이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줄이고 금리를 올려 경제의 과열을 억제하고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정책(금리 인상 → 대출 비용 증가 → 경기 진정 효과)

 

5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의 세상

1장.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이유는?
2장. 닉슨은 왜 금본위제를 폐지했을까?
3장. 볼커, 인플레를 잡다!
4장. 1986년의 유가 급락, 어떻게 발생했나?
5장. 왜 상품시장은 20년 주기로 움직일까?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

닉슨 쇼크 이후의 시장을 보았을 때, 배울 수 있는 점은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것이다. 실질 정책금리에 따라 시장은 상승하기도 하고 하락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1) 실질금리가 높아지면 주식투자에 대한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2) 실질금리가 높아지면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되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중단되고 이로 인하여 고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추가로 소비자들의 저축 성향이 강해져 경제 전체의 성장 탄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질금리의 가파른 상승은 경제 전체에 불황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 금본위제란? 
    화폐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연동시키는 화폐 제도
    • 장점: 물가 안정(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화폐 발행), 국제 무역 안정성(적은 환율 변동)
    • 단점: 경제 위기 시 대응 제한(경기 침체 시에도 정부가 유연하게 화폐를 발행할 수 없음), 운영 비용 증가(금 보유량 유지와 관리에 많은 비용)
  • 1971년 닉슨쇼크 이후, 경기순환이 점점 길어지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미경제분석국(NBER)은 실질 GDP가 전분기 대비 2분기 연속 감소한 경우 불황으로 보기도 했으나, 공식처럼 활용하지는 않는 듯하다.)
    • 1854년~1919년(금본위제 시절): 경기순환의 평균 지속 기간이 48.2개월(4년 주기)
    • 1919년~1945년: 53.2개월
    • 1945년~2009년: 69.5개월
       (아래의 이미지 참고: 분기별 미국 실질 G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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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일본 경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1장. 플라자 합의는 어떻게 벌어졌나?
2장. 미국 블랙 먼데이, 일본 자산가격의 버블을 촉발하다!
3장. 일본 주식시장, 얼마나 비쌌나?
4장. 일본 부동산시장은 갈라파고스?
5장.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될 때 불황이 출현하는 이유는?
6장. 자산가격 하락이 장기불황으로 이어진 이유는?
7장. 일본 중앙은행은 왜 금리인하를 미뤘나?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 한다!

6부를 통해 일단 경기가 디플레의 늪에 빠지면 그 나라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은 부동산시장이 회복되고 금융기관이 다시 건전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거나,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해 돈을 쏟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중앙은행이 인플레 압력이 높은 것을 핑계로 금리를 두 차례 인상했다가 유럽 경제는 기나긴 침체를 겪어야 했다.

 

7부 1997년 우리나라는 왜?

1장.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는 어떤 성취를 기록했나?
2장. 토지개혁, 번영의 초석을 놓다!
3장. 우리나라는 어떻게 수출 제조업을 육성했을까?
4장. 미국에서 만드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게 더 싸다고?
5장. 우리나라는 왜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졌나?
6장. 외환위기 이후, 어떤 변화가 나타났나?
7장.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나타난 이유는?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국내 수요가 부진한 모습을 보일 때, 적극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 전체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에 대비하여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긴축적인 재정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제 개념 익히고 가기)

 

GDP = 소비 + 투자 + 수출 - 수입

GDP - 소비 = 투자 + 수출 - 수입

저축 = 투자 + 경상수지

저축 - 투자 = 경상수지

 

→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는 것: 외환위기 이후 가계과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져와서 발생

 

  • 경상수지란? 
    국가가 수입 수출을 하며 발생하는 수입 - 지출(경상수지 흑자는 해당 국가가 외국에 대한 순 대출 기관인 것, 경상수지 적자는 외국에 대한 순 차용자인 것)

 

 

 

 

 

 

 

 

 

 

 

 

 

 

 

 

 

 

 

책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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